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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13 23:33
김재국-너나 잘 하세요-!!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132  

너나 잘 하세요-!!

 

서남대 교수 김재국

 

강단에서 법학을 이야기한 지 벌써 20년이 넘어섰다. 그동안 법학개론을 강의할 때에는 악법도 법인가?”라는 주제를 빠뜨리지 않고 진행했다. 이 주제에서는 소크라테스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나는 철학자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내가 교과서를 통해서 배운 지식의 범위 내에서만 그 주제를 해결하였다. 한편으로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제대로 알지는 못하고 있다는 송구함을 숨기고서…….


그러던 2013년 어느 날, 소크라테스의 일부라도 알고 싶어졌다. 누렇게 변색되어 있던 책과 최근 서적을 집어 들었다.



  소크라테스는 2가지 죄명으로 고소를 당하였다. 하나는 아테네의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국가가 인정한 신 대신에 이상한 신을 믿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을 향해 자신을 변호하는 변론을 펼쳤으나 결국 근소한 차이로 유죄 평결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어 유죄에 대한 형량을 결정하는 재판에서 배심원들에게 선처를 호소하지 않고, 오히려 배심원들을 훈계함으로써 압도적인 표차로 사형 평결을 받게 된다. 이 과정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기술한 것이 변명이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그를 따르는 제자와 친구들이, 간수를 매수하면 도망갈 수 있다고 소크라테스를 회유하였으나, 그는 이 제안을 거절하고 의연히 독배를 마신다. 이 과정에서 크리톤과 소크라테스의 대화 내용를 기록한 것이 크리톤이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다만,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대화를 이어가며 탈옥을 거절하였다. 내가 지금까지(70여년 동안) 아테네에서 살았다는 사실은 아테네가 명령한 바를 준수하기로 동의한 것인데, 법이 나에게 불리해졌다고 해서 그 법을 어기는 것은 비겁한 일이지 않는가? 부정을 부정으로 갚는 것은 옳지 않다. 법정의 사형선고는 잘못되었지만, 그렇다고 탈출하는 행위도 그에 못지않게 나쁘다. 그렇다면 차라리 부정의 희생자가 되는 게 낫다. 여기에서 후세사람들이 악법도 법이다.”를 추론한 것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부정의한 일에 관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을 것이고, 복종하기 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과거에 자신이 목숨을 걸고 정의롭지 못한 명령에 불복종한 사실을 증거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그는 결코 정의롭지 못한 일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그런 그가 독재권력이 즐겨 찾는 악법도 법이다의 주인공이 된 사실이 아이러니이다. 이와 관련하여 피트킨(Hanna Pitkin)은 지적하기를,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을 통해 자신에게 내려진 판결만이 우연히 부정의한 것이었을 뿐, 자신은 아테네의 법률에 관한 한 어떠한 하자도 발견하지 못했으며, 그 법률을 운용하고 있는 아테네 정치질서 일반에 관해서도 아무런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고 있다는 점을 피력한 것으로 이해한다. 어찌됐든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적은 없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어떠한 해악(부정의)을 당하든 그 사람에게 해악(부정의)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는 사유에 기반을 두고 아테네의 법에 순응하지 않았을까?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지식을 강연으로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잘났다고 하는 자와의 대화를 통한 논쟁으로 그들이 무엇을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를 파고 들었다. 물론 자신은 무지(無知)하다는 전제에서 상대방의 논리적 허점을 집요하게 추궁함으로써 상대방이 결국 논리적 모순에 빠져 있음(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였다. 당시의 이름있는 현자들은 자신들이 무지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무지하다는 소크라테스는 이들을 무너뜨렸다. 소크라테스는 이들보다 한 가지는 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지하다는 점을.... 이것이 바로 소크라테스 사상에서의 무지(無知)의 지(이다. 그에 따르면, 지식은 지식 자체만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아는 만큼 행하는 지식이어야 하고, 선을 알고 나면 일부러 악을 행하는 사람은 없으며, 모든 악은 인간이 선을 잘 모르는 데서(무지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괴테는 생각은 쉽고 행동은 어렵다. 그런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에서 손까지라는 말도 있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주저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모든 진리는 무지를 자각하는 사람에게만 파악된다. 즉 진리는 겸손한 자에게만 스스로를 나타내는 것이다. 자신의 무지를 자각한 사람만이 지혜를 열렬히 사랑하게 되고, 그런 애지자(愛智子)만이 영혼을 잘 가꿔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국무총리를 역임하셨던 정운찬님께서는 고전은 누구나 좋다고 하는데, 누구나 안 읽는 책이라고도 하지요. 고전을 읽으면 두가지 좋은 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남하고 소통할 때 많은 것을 줄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누구도 고전을 읽지 않기 때문에 토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라고 하셨다. 그동안 방치하였던 고전, 변명과 크리톤을 통해 그동안의 나의 무지를 깨달았다. 그리하여 내가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겸손, 내가 가진 기준이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겸손,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모든 지식의 극히 일부분이라는 겸손, 내가 상처입은 상황이 모두 상대방의 잘못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겸손(딕 티비츠의 '용서의 기술'에서)’의 의미를 깨닫는다. 참으로 젊은 날의 독서는 틈 사이로 달을 엿보는 것과 같고, 중년의 독서는 뜰 가운데에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며, 노년의 독서는 누각 위에서 달구경하는 것과 같다(청나라 시인 장조의 '유몽영'중에서)”를 실감한다.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지 못한 자들로 인해 오늘날 교육현장, 경제현장, 그리고 정치현장이 시끄러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잘못된 아집에 사로잡히지 않고 상대방과 끊임없이 대화하여 서로의 모순을 털어내고 진리에 접근하려는 노력 그 자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소크라테스가 말하고 있는데도……. 중용에서도 활쏘기는 군자의 태도와 비슷함이 있으니 그 정곡을 맞히지 못하면 돌이켜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다.’라는 반구저신(反求諸身)의 지혜를 가르치고 있는데도…….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민심이 어수선한 2014년의 세밑에, 친절한 금자씨의 너나 잘 하세요-!!”가 귓전에 맴돈다.